빠르게, 더 멀리, 더 강하게. 러닝을 이야기할 때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지만, 최근 운동생리학 연구들은 정반대의 방향에 주목하고 있다. 걷기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살짝 빠른 속도로 달리는 **’느리게 달리기(슬로우 조깅, LSD·Long Slow Distance)’**가 오히려 몸과 뇌에 폭넓은 이득을 준다는 것이다. 여러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느리게 달리기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정리했다.
느리게 달리기란 무엇인가
느리게 달리기를 학문적으로 처음 체계화한 사람은 일본 후쿠오카대학교 스포츠과학연구소의 다나카 히로아키(Hiroaki Tanaka) 교수다. 그는 최대심박수의 약 65~80% 수준, 즉 옆 사람과 대화를 이어갈 수 있을 정도의 강도로 달리는 것을 ‘슬로우 조깅’이라 이름 붙였다. 때로는 빠른 걷기보다도 느린 속도로, 발끝으로 사뿐히 착지하듯 달리는 것이 특징이다. 다나카 교수는 이러한 저강도 운동이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평생 운동’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말레이시아에서 진행된 성인 대상 LSD 러닝 연구에서도 느리게 달리기를 “필연적으로 강도가 낮고 주기적인 성격을 가진 운동 기법”으로 정의하며, 하루 30~40분씩 꾸준히 이어가는 조깅으로 규정하고 있다.

1. 심장과 혈관을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단련한다
느리게 달리기의 가장 먼저 언급되는 효과는 심혈관계 건강이다. 세부 지역의 러닝 코치들을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LSD 러닝은 혈압을 낮추고 혈액순환을 개선하며 심장질환 위험을 낮추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낮은 강도로 오랜 시간 달리면 몸이 산소를 사용하는 효율이 점차 높아지고, 이는 심장과 폐가 더 적은 부담으로 더 많은 혈액과 산소를 전신에 공급할 수 있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말레이시아의 LSD 연구에서도 이러한 지구성 훈련의 생리학적 이점을 구체적으로 짚었다. 근육 모세혈관의 크기와 밀도 증가, 미토콘드리아의 수와 크기 증가, 적혈구와 헤모글로빈 농도 및 총 혈액량 증가 등이 대표적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안에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발전소’ 역할을 하는데, 저강도 지구성 운동을 꾸준히 반복하면 이 발전소의 개수와 효율이 늘어나면서 몸 전체의 에너지 대사 능력이 향상된다.

2. 체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쓰는 몸으로 바뀐다
느리게 달릴 때 우리 몸은 상대적으로 탄수화물(글리코겐)보다 지방을 우선적인 연료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관련 자료들은 느린 속도로 달리는 훈련을 반복하면 몸이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능력이 향상되고, 이는 체중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말레이시아에서 성인 남성 12명을 대상으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주기에 걸쳐 진행된 사례 연구에서는, 하루 30~40분씩 꾸준히 실시한 LSD 러닝이 처음 2주기 동안 체중 감량에 유의미한 효과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후 체중이 일정 수준(평균 83kg)에서 정체되는 양상도 함께 관찰되어, 연구진은 지속적인 체중 감량을 위해서는 점진적 과부하 원칙, 즉 운동량이나 강도를 서서히 늘려가는 전략이 함께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3. 관절과 근육에 부담을 덜 주면서 부상 위험을 낮춘다
빠른 속도의 훈련은 근력과 파워를 키우는 데 효과적이지만, 그만큼 관절과 힘줄, 근육에 가해지는 충격도 크다. 반면 느리게 달리기는 상대적으로 낮은 지면 반발력으로 무릎, 발목 등 관절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이는 과사용으로 인한 부상을 예방하고, 몸이 회복하고 강해질 시간을 벌어주는 효과로 이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느리게 달리기는 장시간 지속되는 움직임에 관여하는 지근섬유(slow-twitch fiber)를 주로 사용한다. 이 근섬유들이 반복적인 저강도 자극을 받으면 더 효율적으로 발달해, 장거리 달리기나 오래 지속되는 신체 활동에서의 근지구력이 향상되는 것으로 설명된다.
일본에서는 이 원리를 러닝이 아닌 저항운동에도 적용한 연구가 있다. 제2형 당뇨병을 가진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천천히 움직이며 근육에 지속적인 긴장을 유지하는 저강도 저항훈련(LST)을 12주간 실시한 결과, 하지 근육량 비율이 유의하게 증가하고 체지방량과 체지방률은 함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느리게’ 움직이는 방식이 관절이나 심폐계에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근육에는 충분한 자극을 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4. 나이가 들어도 다리 근육과 걷는 능력을 지켜준다
느리게 달리기의 효과가 가장 뚜렷하게 확인된 집단 중 하나는 고령층이다. 다나카 교수 연구팀이 2017년 발표한 무작위 대조 연구(RCT)에서는 평균 70.8세의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12주간 짧은 간격의 저강도 슬로우 조깅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은 평소 걷는 속도와 같거나 그보다 느린 속도로 달리는 방식이었는데도, 참가자들의 유산소 능력과 신체 기능, 다리 근육의 조성이 유의미하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슬로우 조깅 그룹에서는 하퇴부의 세포 내 수분량이 늘고, 피하지방과 근육 내 지방 침윤은 감소하는 변화가 관찰되어, 낮은 골격근량을 가진 고령자도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는 운동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최근 일본에서 제2형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에서도 비슷한 접근이 이어지고 있다. 관절이나 심폐계에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하지 근육량과 기능을 개선할 수 있다는 가설 아래, 하지 중심의 저강도 슬로우 운동 프로그램을 5개월간 적용해 노쇠 관련 지표(운동기능저하증후군, locomotive syndrome)의 개선 효과를 살펴보고 있다. 이는 느린 속도의 반복 운동이 근감소와 낙상 위험이 큰 고령층에게 안전하면서도 효과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5. 뇌 기능과 기분에도 영향을 미친다

느리게 달리기의 효과는 몸에만 그치지 않는다. 2024년 발표된 한 신경과학 연구는 매우 가벼운 강도의 느린 달리기가 뇌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봤다. 이전 연구들에서는 중강도 달리기가 전전두엽 피질을 활성화해 실행기능을 향상시키고 기분을 좋게 만든다는 결과가 있었지만, 중강도 운동은 체력이 낮은 사람이나 고령자에게는 관절 부담이 크고 꾸준히 지속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연구진은 걷는 속도에 가까운, 스트레스가 적은 강도에서도 비슷한 효과가 나타나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이 연구는 동물 및 인간을 대상으로 한 선행 연구에서 젖산역치 이하의 가벼운 운동이 인지 기능에 관여하는 뇌 영역의 기능을 향상시킨다는 점에 주목했다. 달리기는 발이 지면에 닿을 때마다 발생하는 리드미컬한 충격을 통해 전신, 특히 하지 근육에 생리적 변화를 유도하고 말초 및 중심 혈류를 개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연구진은 이러한 기전이 매우 느린 속도의 달리기에서도 작동해 기분 개선과 실행기능 향상을 동시에 가져올 수 있다고 보았다. 즉 최소한의 신체적 부담으로도 정신적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운동 방식이라는 것이다.
6. 대사 질환 관리에도 활용된다

느리게 달리기, 그리고 이와 유사한 저강도 지속 운동은 당뇨병과 같은 대사 질환 관리에서도 연구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저강도 저항훈련 연구 외에도, 저강도 유산소 운동에 혈류제한(BFR) 기법을 결합한 훈련이 신체 조성과 체력, 혈관 반응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보고도 있다. 예컨대 혈류제한을 곁들인 느린 속도의 걷기 훈련만으로도 운동 후 성장호르몬 분비가 증가하고, 3주 만에 허벅지 근육 단면적과 부피가 4~7% 늘었다는 연구 결과가 소개되기도 했다. 이는 저강도 운동이라도 방식을 조합하면 근력 운동 못지않은 자극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론 저강도 신체활동(LIPA)이 모든 대사 지표에 동일한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33건의 중재 연구를 검토한 자료에 따르면, 저강도 신체활동은 건강한 사람에게서는 심혈관 위험 요인을 뚜렷하게 개선하지 못했지만, 평소 신체활동이 적고 기저질환이 있는 집단에서는 수축기·이완기 혈압을 개선하는 효과가 확인됐다. 즉 느리게 달리기의 효과는 누가, 어떤 상태에서 시작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정리하며
여러 연구를 종합하면 느리게 달리기는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몸에 영향을 미친다.
- 심혈관계: 혈압 개선, 혈액순환 향상, 모세혈관·미토콘드리아 증가를 통한 유산소 능력 향상
- 체중·대사: 지방을 우선 연료로 쓰는 능력 향상, 체지방 감소(단, 정체기 관리를 위한 점진적 강도 조절 필요)
- 근육·관절: 지근섬유 발달을 통한 근지구력 향상, 낮은 충격으로 인한 부상 위험 감소
- 고령층: 걷는 속도 수준의 달리기만으로도 다리 근육량·기능·유산소 능력 개선
- 뇌·기분: 매우 가벼운 강도에서도 실행기능과 기분에 긍정적 영향 가능성
- 대사 질환: 당뇨병 등 기저질환자의 혈압·근육량·체지방 개선에 활용 가능
빠르게 달리는 것만이 운동 효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여러 연구가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지점이다. 특히 운동을 처음 시작하거나, 관절 부담이 걱정되거나, 고령인 경우라면 ‘느리게, 그러나 꾸준히’ 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면서도 근거 있는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참고한 자료
- Tan, C.H., Wee, E.H., Ong, S.L., & Tham, Y.C., The Effectiveness of Physical Activity (Long Slow Distance Run) in Weight Lose for Adults
- Tan, C.H. et al., The Effectiveness of Long Slow Distance Run (LSD) and Stepping Exercises in Weight Lose Among Male Adults
- LSD run: The benefits in Long Slow Distance running, Cebu Daily News
- Slow running benefits: Boosts in mood and facilitation of prefrontal cognition even at very light intensity, bioRxiv, 2024
- Ikenaga, M., Yamada, Y., Kose, Y., Tanaka, H. et al., Effects of a 12-week, short-interval, intermittent, low-intensity, slow-jogging program on skeletal muscle, fat infiltration, and fitness in older adults: randomized controlled trial, European Journal of Applied Physiology
- Effects of Lower Limb-Focused Low-Intensity Resistance Exercise Using Slow Movements on Locomotive Syndrome in Patients with Type 2 Diabetes Mellitus
- Associations of Low-Intensity Resistance Training with Body Composition and Lipid Profile in Obese Patients with Type 2 Diabetes
- Effect of Low-Intensity Aerobic Training Combined with Blood Flow Restriction on Body Composition, Physical Fitness, and Vascular Responses in Recreational Runners
- Tanaka, H., Slow Jogging: Lose Weight, Stay Healthy, and Have Fun with Science-Based, Natural Running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건강 상태가 있거나 운동을 처음 시작하는 경우에는 의료 전문가와 상담 후 운동 강도와 방법을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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